“왜 다문화 가정은 늘 받기만 해야 하나요. 아빠들이 스스로 노력해서 2세들이 당당하게 살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싶어요.”
금강 상류 맑은 물 푸른 산의 고장인 충남 금산군의 다문화 가정들 사이에 변화를 꿈꾸는 여울물 소리가 잔잔히 퍼지고 있다. 베트남·필리핀·중국·일본 등에서 부인을 맞이한 남편들이 모여 지난해 12월 ‘금산군 다문화 협동조합’을 꾸렸다. 조합원 14명, 자본금 1000만원으로 발걸음을 뗀 이들은 첫 사업으로 올해 깻잎 농사와 인삼 가공·유통에 나선다.
13일 파종 준비를 얼추 마친 비닐집 안은 겨울철인데도 김이 훅 서릴 정도로 포근했다. 김영섭(46) 대표는 “다문화정책의 실패 원인 가운데 하나가 일회성 퍼주기 때문이에요. 받는 것에 너무 익숙해지고 길들여진 거죠.” 김 대표는 아빠들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2011년 두달 동안 군의 다문화 가정들을 일일이 방문한 끝에 다문화 자조모임(cafe.daum.net/rmatksekansghkrkwhr)을 꾸렸다. 자립해야 살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한 남편들 30여명이 모여 봉사단부터 만들었다. 봉사단은 그동안 어울림 한마당 체육대회도 열고 국수 대접이나 연탄·가스 배달 등 크고 작은 봉사를 이어왔다.
이들은 다문화 가정들이 자립하고 협력하려면 장기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공동체 사업이 필요하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. 지난해 7월 협동조합 결성식을 한 뒤 절임배추 6000포기를 심었지만 잦은 비에다 파종도 늦어 겨우 본전만 건지는 데 그쳤다. 하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올해 1만6000여㎡(5000평) 터에 깻잎 농사를 짓기로 했다. 깻잎은 재배가 비교적 쉽고 파종 뒤 두어달 뒤부터 늦가을까지 수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. 김 대표와 설희수(50) 상임이사가 조합에 상근하면서 농사에 전념할 참이다.
세계 곳곳에 있는 처갓집들을 유통 거점으로 삼아 금산의 특산물 인삼도 판매에 나서기로 했다. 김 대표는 이를 ‘처갓집의 대리점화’라고 불렀다. “처갓집의 대리점화, 멋지지 않나요. 외가가 잘살면 우리 아이들도 당당하니까 좋잖아요.” 조만간 김 대표는 베트남 호찌민을 찾아 사업을 시작한다. 금산에서 난 질 좋은 인삼을 직접 홍삼으로 가공한 뒤 다문화 협동조합 상표를 내걸어 판매할 계획이다. 수익금으로 다문화 가정의 낡은 농가 2채를 수리해주는 것도 목표다.
금산 다문화 협동조합이 농사일에만 매달리는 건 아니다. 김 대표는 부인들이 영어·중국어·일본어 등 여러 언어에 능통하다는 점에 착안해 다문화 어학원도 구상중이다. 엄마들이 직접 강사가 돼서 아이들을 가르치면 마땅한 학원도 없고 과외를 시킬 경제적인 여유도 없는 다문화 가정에 안성맞춤인 셈이다.